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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리자 2017-03-03 2,124
[월간 환경과 조경, 2017년 2월] 서해의 비원, 보령 상화원

http://www.lak.co.kr/greenn/view.php?cid=64370 


  • 환경과조경
  •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홍정완 상화원 원장 서해의 비원, 보령 상화원
    • 최이규 (yichoe2013@gmail.com)
    • 환경과조경 2017년 2월



    상화원.jpg

     

    여기 어떤 이가 만든 비밀의 정원이 있다. 처음엔 그저 홀로 즐기기 위해 시작됐지만,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누구나 찾아가 쉬며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정원의 둘레를 휘감는 1km 넘는 지붕 회랑을 만든 수고로움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섬을 찾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보다 근사하고 편안하게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고된 시간과 예사롭지 않은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게다가 급히 완성할 목적으로 효율성만 추구하지도 않았다. 원래 살던 죽도 주민의 발자국이 겹쳐져 생긴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틀어지면 틀어지는 대로, 땅의 흐름과 박자를 맞추며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지었기에 3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도중에 만나는 나무는 하나라도 베는 일없이 곁을 돌아가거나, 아예 회랑 바닥과 천정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품어버렸다.

     

    조화를 숭상한다는 이름에 걸맞은 회랑이다. 그러기에 상화원은 비단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고 뜻과 의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경치를 가진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고 감정적으로 진한 무언가를 느끼며 또 존경스런 마음으로 거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급조된 것만 성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뭔가 다른 내면의 성숙과 정직한 부지런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상화원에는 복원된 아홉 채의 한옥이 있는데, 특히 행랑채들이 두드러진다. 『한옥의 섬』이란 책에도 표현되었듯, 행랑이란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사랑채보다 훨씬 자유롭게 열린 공간이다. 상화원 자체가 하나의 푸근한 행랑채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상화원의 시설은 과하지 않고 약간 부족하게 비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필요한 것을 간소하게 갖추어 놓았다. 카페나 식당이 없고, 식사는 외부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하도록 권하고 있다. 비지터 센터에 해당하는 의곡당에서 간단한 커피와 차를 제공하고 있으며, 한옥 복원 지역 내의 한옥은 모두 개방되어 있어 들어가면 셀프서비스로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회랑길에는 무인 생수 판매대가 있어 물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다.

     

    산과 계곡에서 시끌벅적 배불리 먹고 마시고 취하는 우리네 풍조에 대한 주인장의 사뭇 정갈한 대안인 듯하다. 대신 해변독서실, 해변연못, 조각정원, 해송의 숲, 하늘정원 등 책과 예술, 물과 생명, 하늘과 바다처럼 보다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섬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상화원의 또 하나 우수한 점은 한국적 미를 표방한 정원임을 강조하면서도 한옥과 전통 정원의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을 바탕으로 부지 상황에 맞는 배치를 융통성 있게 전개한 점, 그리고 실제 이용 측면에서 실용성을 중시한 점이다. 전국 각지에서 값비싼 세금으로 조성된 진정성(authenticity) 없는 재현 한옥 시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비바람을 맞으며 낡아가는 가운데, 상화원은 한옥의 보존과 재사용에 대한 탁월한 선례를 제시하고 있다. 유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는 한옥의 복원. 오래된 원 재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이건과 복원이라는 힘들고 의미 있고 비싼 길을 택해 세워진 소중한 한옥이라 더욱 더 철저한 보존과 갖가지 금지 목록이 나열될 법하지만, 상화원을 만든 분은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과감하게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마음 가는 대로 드나들도록 한옥을 열어두었다. 그만큼 관람객들을 믿는다는 뜻이겠다. 관람객 또한 그런 의중을 알기에 경우 있는 사람이라면 사뭇 몸가짐을 살피며 고맙게 이용할 것이다. 그런 한옥에는 그저 얼마간 앉아만 있어도 좋다. 수백 년 세월의 때가 묻은 대청마루에서 옥빛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의 감동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캐나다산 소나무로 새로 지은 한옥이나 콘크리트 건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동이다. 섬의 원주민들이 일구던 계단식 밭에 심겨진 한옥들이라 흡사 지중해의 해안 마을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현대 주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바다를 바라보는 워터프런트 조망과 고전적 한옥이 합쳐진 느낌이 묘하다. 먼 길을 이사 온 한옥들이지만, 여기 상화원에서 제대로 된 고향을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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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과 바다라는 언뜻 생소한 결합을 통해 방지와 정자라는 기존 한국 정원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 (사진제공: 상화원)

     

    전국의 많은 한옥이 거주자의 노령화와 관리 비용 및 수리의 난항으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목재와 기와처럼 쉽게 구하기 힘든 재료, 기술자의 부족 등 한옥을 고쳐가며 사는 일에는 상당한 고충이 따른다. 교통이 불편한 산간벽지일수록 사정은 더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옥을 적절히 관리하고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에 집결시켜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대책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또는 한국 정원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상화원은 현실에서 명쾌히 해결하고 있다. 김치와 된장 맛을 아는 사람이 만든 정원은 한국 정원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상화원에서 느낄 수 있다. 이건 중국식이네, 저건 일본풍이네 하는 분류는 더 이상 논쟁의 가치가 없다. 아무리 다양한 문화적 힌트를 섞어놓았다 할지라도 한국 정원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손상된 느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상화원이라는 한국 정원은 우리가 그동안 해외에서 보고 배운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소화해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이가 편협한 순수주의에 갇혀 그러한 절충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만이 한국 정원의 진수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가당착에 불과할 것이다.

     

    늦가을임에도 상화원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하루에 약 천여 명이 다녀간다고 한다. 대천과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제법 알려진 보령이라 해도 먼 길을 달려 웬만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곳 정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정원이란 분명한데,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상념이 들기도 한다.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의 시대.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한 몇몇 제조업의 전국적 파급 효과를 주장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각 지자체가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다. 상화원은 분명 훌륭한 자원이다. 보령과 충청남도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려 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상화원을 이해하고 상화원의 창조자 홍상화 선생의 뜻을 과연 깊이 이해했을지는 의문스럽다. 개인이 사비를 들여 정성껏 가꾸어 온 섬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면, 공적 영역은 그러한 노력에 맞는 화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입구에 상화원의 콘셉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물섬이라는 이름의 게이트 구조물을 설치한 것이나, 관에서 조성한 티가 역력한 주차장과 안내도, 화장실 등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상화원 외부의 난잡한 상업 시설과 경관, 도로, 공적 공간은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상화원을 조성한 분의 안목에 걸맞은 장기적이고 통합적이며 섬세한 계획과 설계가 뒷받침되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큰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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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센터의 역할을 하는 의곡당. 고려 후기 건축으로 추정되는 화성 관아를 이건해 복원했다. (사진제공: 상화원)

     

    앞서 지난 달에 밝힌 대로, 이번 인터뷰 시리즈의 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장소, 다른 하나는 인물. 빼어난 장소는 결코 쉽게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한 인물의 착상과 고통이 동반된 실천이 시간에 녹아들어 농축된 산물이다. 따라서 장소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피상적 이해를 넘어설 수 있다.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가 실제 공간보다 더 흥미로울 가능성도 많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상화원을 둘러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서해의 비원을 가꾸어온 홍상화 선생에 대해 사뭇 궁금한 감정이 생겼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일견 그로테스크하고 절충적(eclectic)인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고 가우디의 정열이 공명되어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환상적인 섬을 만든 분은 가우디와 같은 기인의 범주에 포함됨이 분명해 보였다. 사정상 이번 인터뷰에서는 홍상화 선생을 대신해 현재 상화원 원장이자 모 회사인 ㈜한국컴퓨터지주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는 홍정완 씨를 만났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시간을 내준 홍정완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환경과조경 346(2017년 2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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