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의 죽도에 들어선 상화원의 회랑에서 본 낙조풍경. 상화원에는 나무 덱으로 만든 회랑이 1㎞를 넘는다. 노을을 볼 수 있는 회랑의 이쪽 구간에는 ‘석양정원’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충남 보령 죽도 ‘상화원’에서 감상하는 낙조의 낭만
전국 유서 깊은 한옥 옮겨와 한옥 아홉채·미술관·연못 등 소설가 홍상화씨가 직접 조성
누구나 드나들도록 문 열어놔 관람객들에게 떡·커피도 제공 단체숙박 가능한 빌라도 갖춰
비탈진 바닷가에 들여놓은 아름다운 한옥 마루에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통창으로 가을볕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제 것처럼 누리는 호사.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긴 회랑을 느릿느릿 걷는 산책의 즐거움. 바다와 마주 보는 벤치에 앉아 감상하는 장엄한 낙조의 낭만. 이런 즐거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충남 보령의 섬 아닌 섬, 죽도에 있는 ‘상화원(尙和園)’이다.
# 육지가 된 섬의 유토피아…상화원
상화원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공간이다. 상화원은 죽도에 있다. 죽도는 보령의 대천 해수욕장 남쪽, 그러니까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의 중간쯤에 있다. 죽도는 본래 육지에서 4.5㎞ 떨어진 바다 위의 작은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1999년 말 남포방조제가 놓이면서 육지가 된 곳이다.
상화원에는 유서 깊은 한옥을 이축해 만든 단아한 한옥촌이 있고, 솔숲 안에 들여놓은 현대식 별장도 있으며,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긴 회랑의 산책로도 있고,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성곽 내부 건물을 복원한 건축물도 있다.
상화원은 리조트기도 하고, 공원이기도 하며 찻집이기도 하고, 야외미술관이기도 하다. ‘조화를 숭상한다(尙和)’는 이름에 걸맞게 상화원은 이렇게 서로 다른 이미지의 공간이 한곳에 녹아 있다. 다양한 기능의 건축물이 한데 모여 있다는 건, 그곳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는 뜻이다.
이 공간을 만든 것은 소설가인 홍상화(78) 씨다. 그는 젊은 시절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컴퓨터와 금융 단말기를 국산화한 기업인이었다. 은행 전산망과 의료보험 전산망 등을 구축하는 등 기술개발과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온 한국컴퓨터지주를 일궜다. 그는 나이 쉰을 목전에 둔 1987년에 첫 장편소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일간지 연재를 하는 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그는 소설 집필을 하며 수시로 상화원을 방문해 정원을 다듬고 한옥 복원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상화원에 들인 한옥이야기
상화원에는 숲속에 지은 근사한 2층 빌라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긴 목조 회랑, 전국 곳곳에서 뜯어온 오래된 한옥,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연못 정원이 있다. 이런 건축물과 조경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초는 홍 씨의 고집이다. 홍 씨는 1973년 죽도를 사들인 뒤 비탈진 섬마을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한옥을 정성껏 들여놓았다. 섬 전체를 한옥의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게 그의 꿈이었던 모양이었다.
상화원의 한옥은 모두 아홉 채. 쓰러지고 기울어져 가던 옛집을 사들여 뜯어낸 뒤 죽도로 가져와서 다시 맞춰 지은 것이 여섯 채이고, 복원한 한옥이 세 채다. 여기다가 섬 정상에 곧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을 재현한 건축물을 세울 예정이다.
상화원의 한옥은 낡아 쓰러지려던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니 저마다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상화원 입구의 방문객 센터로 쓰는 한옥 의곡당은 경기 화성 관아의 정자로 세워졌다가 읍내시장의 다방 건물이 되고만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철거 직전에 사서 뜯어다가 이곳에 세웠다. 당당한 솟을삼문을 가진 고창군 홍씨 가옥 문간채는 쇠락할 대로 쇠락해 잡풀들이 먹어치우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고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렇게 충남 보령의 상씨 가옥의 행랑채와 충남 홍성의 오홍천 씨 가옥, 일제강점기 제재목으로 지은 충남 청양의 이대청 씨 가옥 등을 죽도로 옮겨왔다.
한옥 건물은 모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옮겨졌는데, 건축물의 뼈대는 그대로 두되 대청마루에다 통창을 내는 등의 방식으로 현대적인 미감을 보탰다. 건축물의 배치도 한옥의 완고한 격식을 따르지 않았다. 행랑채 옆에다 사랑채를, 또 그 옆에다 안채를 두는 식이다. 온전히 보전된 한옥 건물군을 통째로 가져온 게 아니라 서로 공간에서 남은 건물을 하나씩 뜯어온 것이라 그렇다.
얼핏 두서없어 보이지만, 계단식 구릉에서 하나같이 바다를 조망하는 한옥 건물은 조화로우면서도 독특한 느낌이다.
죽도의 한쪽 해안 구릉에는 전국에서 옮겨온 한옥과 복원 한옥 9채가 들어서 있다.
# 한옥의 문을 활짝 열어두다
상화원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편히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모든 한옥에는 실내화가 있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한옥 대청마루에는 정수기 등을 놓아둬 손수 차를 타서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의 깊이로 반들반들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이곳 말고 또 있을까. 적잖은 돈을 들여 이축하거나 복원한 한옥인데도, 제집인 양 무시로 드나들며 이용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근사한 한옥에서 음식이나 차를 팔면 적잖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상화원은 그런 쪽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하기야 상화원의 자랑 중의 하나가 ‘입장료 말고는 돈 쓸 곳이 없다’는 것이라니 말 다했다. 상화원 안에는 음식점은 물론이고 그 흔한 커피숍조차 없다. 입구에서 관람객들에게 떡과 커피를 주는 것은 입장요금에 대한 보답 같은 것이다. 아이스박스에 생수를 놓아두었지만 가격을 정해놓지 않고 가져가는 이가 제 맘대로 돈을 놓고 가도록 해두었다.
상화원에는 한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옥 뒤쪽으로는 그윽한 정자와 수생식물 그득한 연못, 붓질로 그린 듯한 해송들이 한데 그윽하게 어우러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입구에서부터 바다와 면한 해안선을 따라 나무로 지어 이은 회랑이다. 지붕이 있어 비오는 날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회랑의 길이는 1㎞가 넘는다.
회랑을 끼고 바위 정원과 근사한 연못이 조성돼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줄곧 난간 너머로 바다를 끼고 가는 이 회랑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하다.
# 잊히지 않는 풍경…상화원 낙조
상화원에는 한옥 말고도 숙박이 가능한 20동의 현대식 2층짜리 빌라도 있다. 빌라는 숲속에 있지만 바다를 조망한다. 원통처럼 생긴 빌라 2층의 침실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더없이 낭만적인 숙소다. 얼마 전 상화원의 빌라는 때아닌 주목을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재판에서 이 빌라 얘기가 나왔던 것. 안 전 지사 부부의 침실에 정무비서가 들어와서는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갔다는 이른바 ‘상화원 사건’이 벌어진 곳이 이 빌라다.
그런데 개별 관광객이 이곳에서 숙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 숙박은 받지 않고 빌라 1채당 정원 5명을 기준으로 25명 이상의 단체에만 빌라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리 까다로울까. 상화원 관계자는 “빌라는 돈을 벌려는 목적보다는, 관광특구 지정의 의무 시설이라 짓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건 숙박뿐만이 아니다. 상화원은 금·토·일요일에만 개방한다. 그것도 4월부터 11월까지만 문을 열고 나머지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 관람객을 끌어들이느라 안달인 다른 관광시설에다 비하면 콧대가 여간 높은 게 아니다. 상화원의 관심사가 손님 끌기가 아니라 최고의 정원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는 말이 믿기는 건 그래서다. 그럼에도 많을 때는 하루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곳을 찾아온다.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여름에는 해가 길어서 개방시간 중에는 상화원에서 낙조를 볼 수 없었는데, 해가 짧아진 이즈음에는 바다 위로 낙조가 번져가는 모습을 상화원의 회랑에서 감상할 수 있다.